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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와 교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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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0-17 11:45 조회3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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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와 교회

레오나르도 두한

 

 

 

1. 평신도의 의미

  ‘평신도’란 누구이며 무엇인가? 우리는 이 ‘평신도’란 말에 어떤 의미를 - 교회적, 영적, 전례적으로 - 두고 있는가? 때때로 교회 안에서조차 이 말은 무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동적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예수는 그 당시 평신도들에게 설교했고 사두가이파도 바리사이파도 율법학자들도 아닌 바로 평신도들 가운데서 제자들을 뽑으셨다. 더우기, 예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특정한 전례문이라던지 교회 구조 또는 성직 등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이런 것들은 초창기 교회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평신도’, ‘전례’, ‘성무활동’, ‘교계제도’, ‘사제’, ‘부제’, ‘수도자’등등의 용어는 예수님 당시의 복음활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초창기 교회 문헌들을 살펴보면 평신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공동체 지도자들을 뽑았고, 이렇게 뽑힌 사람들이 성찬례를 거행하였으며, 모든 평신도들은 능동적으로 미사 전례나 복음 선포에 참여했다. 

 

  히브리 성서를 번역한 그리스어 판본 성서에서 ‘라오스’(Laos)라는 말은 그 당시 다른 이방인들과 대비되는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었다. 초창기 그리스도교 문헌들을 보면 이 단어를 ‘하느님의 백성(laos theou)’이라는 말로 교회 공동체를 일컬을 때 사용하였다. 또 이 말은 ‘선택된 사람들(eklektoi)’라든지 ‘성스러운 사람들 (hagioi)’또는 ‘사도(Mathethi)’나 ‘형제 자매(adelphoi)’등등의 말과 자주 혼용해서 사용되었다. 이렇듯 교회가 생긴 초창기 약 200여년 동안 이 말은 신앙인들을 긍정적인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라오스(laos)를 지도자들과 대조되는 단순하고 열등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경우는 겨우 대여섯 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신도’(laikos)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 라오스(laos)의 부정적인 의미에서 나왔다.  로마의 클레멘스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으로 ‘평신도’(laikos)라는 말을 힘없는 일반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또한 오리게네스나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시프리안은 이 단어를 성직 교계제도와 대비되는 일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부르는 말로 사용했다. 예레니모는 불가타 역 성서에서 ‘평신도’라는 말을 성스러운 사람들과 대비되는 세속적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평신도들을 교회의 ‘평민’들로 보려는 경향은 초창기 교회 역사 안에 있었던 세가지 발전상과 더불어 강화되어갔다. 즉 첫째는 일부 교회 교부들에게 영향을 미친 신 플라토니즘이었고 둘째는 수도 생활의 발전이었고 셋째는 교회 사제직의 발전이었다. 이 세 가지 흐름은 모두 다 평신도들이 하층민이라는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평신도들은 세속적인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수도생활과 성스러움을 동일시하게 되면서 평신도 영성에 대해서는 거의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평신도들은 복종하는 사람들이고 힘없는 사람들로 전락하게 되었다. 4세기에 이르러서 교회 구조는 정치적인 구조를 닮아가게 되었고, 과거에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었던 사제라는 개념이 이제는 몇몇 교부들의 분명한 가르침과는 반대로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그래서 평신도의 복종은 교회 역사 안에 굳어지게 되었다. 이제 ‘평신도’라는 말은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전례에서 평신도들은 성직자들과 따로 분리되었다. 성직자들은 일반 사람들과 거룩한 곳을 분리시켜 놓기 위해서 단단한 칸막이를 만들게 되었고 (가장 빠른 것은 390년 안티오키아서 만들어 졌고, 570년에 산타 소피아와 콘스탄티노플에 생겼다) 지금 있는 제대 앞의 난간은 단지 그 자취일 뿐이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각 계층간 구분은 특히 교회 법령에 매우 확고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구분은 교회가 생긴 직후 처음 300여 년 동안에 있었던 공동체와 공동체가 선출한 교계 지도자 간 있었던 역동적인 상호 관계와는 안 어울리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황제가 교회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계급을 중시 여기는 정치적인 공동체가 발전했고, 곧 교회도 이것을 모방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공동체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평신도들에게까지 넓혀 갔고, 결과적으로 교회 안에 이중적 구조를 만들어서 소소한 교회 업무까지도 사제들의 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점차적으로 친교의 교회에서 힘의 교회(Congar)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평신도들의 수동성은 중세 시대에 더 강화되었고, 중세 시대에 열렸던 공의회들은 이를 공고히 했다. 실제로 트렌트 공의회는 사제와 일반 신자들 간의 구분을 법제화했다. 그럼으로써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에 더 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성직자들의 지배력이 매우 커짐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이제 ‘교회’는 교계 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2. 평신도에 대한 이해와 체험의 변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전된 세 가지 변화는 3세기 말 4세기 초 부터  변질되기 시작 한 평신도의 역할과 삶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은 1985년 특별 주교회의에서 다시 강화되었는데, 여기서는 통교를 이루는 공동체(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Lumen gentium[L.G.], 31,1)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 공동체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독특한 은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교회 전체의 선익을 증진시키는’공동체이다. (L.G., 13.3) 이렇게 통교를 이루는 공동체라는 교회론과 동등한 제자직의 개념(교회헌장 L.G., 40.3)을 회복한 것은 누구나 거룩함에 불림 받고 있다는 공의회의 선언과 세속적인 현실의 자율성에 대한 선언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Gaudium et spes, 36)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이러 세 가지 핵심적인 신념은 평신도의 삶(교회 헌장 L.G., 31)에 대한 공의회의 신학적인 성찰 안에 담겨 있다. 즉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분열을 피해야하며, 단순하게 교회 조직 안에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역시 전체 교회 안에서 책임을 나누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한시적인 사회 안에서 세속적인 규칙 역시 평신도들의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특별한 방법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공의회 이래로 수년간 우리들은 평신도들에 대한 몇 가지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때때로 공의회에서 발전된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다른 둘과 분리함으로써 발생한다. 1980년대 우리는 협력이 증진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들도 이어졌다. 새로운 교회법이 1983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법에서는 신자들, 특히 교회의 일원으로서 평신도들의 유례없는 여러 권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새로운 교회법의 교회론은 공의회의 교회론과는 다르며 교회 역사상 나타났던 어떤 문헌들 보다 더 교계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 1985년 처음 발표된 평신도에 대한 주교회의는 전 세계적으로 평신도들의 역할에 대해서 성찰해 보게 끔 자극을 주었다. 이 회의가 끝날 때 ‘하느님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하였고, 여기에서 건의한 것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쓴 평신도에 대한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Christifideles laici)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 문서는 1988년 12월 30일에 반포되었고, 1989년 2월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 사도적인 권고는 긍정적인 문서로서 공인된 것이었다. 이 문서에서 교황은 평신도 신앙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과 구별되는 평신도들만의 독특한 몫이 있음을 밝혔다. 이와 함께 세례 성사를 통해 받은 공통의 존엄성과 성스러움에로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근간으로 평신도들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드러내주었다.  평신도에 대한 주교회의는 평신도의 삶에 대한 공의회 핵심 주제를 다시 천명한 것이다. 즉 평신도들의 복음사명과 성소는 교회를 통교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며 평신도들의 사목은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상황 안에서 봉사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신학적인 이해를 보완하는 것은 지난 십 여년 간의 평신도들의 체험이다. 평신도들은 점점 더 스스로를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삶 안에 참여해야 하는 자신의 책임을 깨닫게 되었다. 매주 전례에 기존과는 다른 입장에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복음 활동에 헌신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자신들의 지역 교회 안에서 발전된 새로운 구조를 보고 있다. 즉 주교회의, 교구 회의에서 평신도들은 교구의 재정적, 행정적, 교육적, 영적인 업무에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이제 교회 안에서 주요한 지도적인 업무들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상담자로서, 신학자로서, 교구나 국가단위의 실무자로서, 한 국가차원 혹은 세계적인 차원의 신앙 운동의 책임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치, 경제, 교육, 건강 그리고 다른 여러 전문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앙인이 있음을 알고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것을 시장(市場-세속에서의)에서의 평신도들의 사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점차 많은 평신도 신앙인들이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신들의 평범한 삶의 영역이 지니는 신앙적인 가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이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치에 따라 가정 생활, 사회적, 공적인 일, 정치적인 책임에서 전문성을 강화시켜 가고 있다. 

 

  분명히 많은 평신도들에게 여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전된 여러 내용들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 많은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향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와 자신들의 역할을 찾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와 세례를 받음으로써 받은 소명에 가치를 두고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카리스마와 상호 책임감, 각각의 참여, 단체 안에서의 민주주의, 거룩함과 복음 활동이라는 보편적인 성소, 이 세상과 현실의 중요성에 의미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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