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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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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14 11:10 조회1,2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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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체험

- 우리의 생활지향 -

 

 

 

모든 CLC 모임에서는 회원들이 특별한 그리스도인다운 태도를 갖도록 임무를 준다. 그러나 이 태도라는 것은 다음 모임이 있기까지의 한 주일 동안 일상생활에서의 노력을 통하여 계속 준비될 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따라서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다른 모든 것에 가장 우선하는 전제 조건이 되는 아래의 것을 익히는 것이 우리의 영성생활에 언제나 필수적이다. 즉 어떻게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침묵 속에서 들어가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가의 방식이다. 이는 우리의 생활과 기도 생활의 기본 태도이다. 다음의 방식들을 잘 익히도록 하자.

 

첫째, 침묵은 외적 소음이 없는 것으로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 시끄러운 도시의 삶으로부터 조용하고 비교적 고적한 장소인 산, 시골, ‘골방’, 또는 조용한 경당 같은 곳으로 잠적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외적인 시끄러움이 없다는 것이 때로는,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내적인 고요함을 가져옴으로써 무언가를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에 좀 더 자주 우리는 이러한 순간 우리가 제발 모조리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바로 우리의 상상력과 수많은 생각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홍수처럼 밀려들어 우리 자신을 휩쓸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체험을 통하여 우리는 진정한 침묵은 내적인 동요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하여 어떤 것들에 사로잡히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면 날수록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째, 침묵은 자신을 자각하게 되어가는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데, 자각을 통하여만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번민이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진정한 내적평화를 느끼게 되거나 자신의 상상력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자각의 상태는 긴장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잘 알게 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평안의 상태를 이룬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갈망하거나 스스로 계속 이를 상기하고자 노력하는 데 한해서만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본성과 자질은 그러므로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랜 시간을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그 산꼭대기로부터 내려오면서, 음악회를 여는 첫 현악기의 음색을 미동도 않고 들으면서, 공동체와 함께 부르는 성가가 또는 공동체와 기도하는 도중에 순간 느껴지는 정적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통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으면서, 우리는 자신과 함께 고독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깊은 연대를, 모두 일치하여 그리고 동시에, 갑자기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특별히 허락된 순간에, 우리는 커다란 내적 자유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현저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셋째, 침묵은, 희미하면서도 충만한 희망을 넌지시 우리에게 지각하도록 하는데. 즉 그 희망이란 지금까지 우리를 이루어왔던 우리 자신과 그리고 이 가시적 우주를 넘어서는, 그 모든 것을 포옹하는 하나의 전적인 현존이 바로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자발적이면서도 심오한 이 지각은, 신비스럽고 내밀하고 무한한 이 세상을 향하여 계속 열려있음으로써, 하나의 기다림이 되면서 열망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종종 그것은 우리가 조용히 쉬기 위하여 들어간 한 성당에서 잠시 시간을 갖고 나서 그곳을 떠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의 뒤에 남는, 그런 그 현존과의 은밀한 만남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 마음의 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한 순간의 환상,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 인간이 해명할 수 없는 하나의 이해를 가져오게 되는데, 비록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빛의 순간은 우리 일상생활에 길게 연장되어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대한 사고 속에서 생겨나는 것도, 세밀한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것도, 더 나아가 분명하게 성취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안전성에서 확보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한 현존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현존만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현존이기도 한 것인데, 순수한 선물로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기꺼이 맞이함으로써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 다른 어떤 현존은 당연히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단 한 분뿐인 그 분인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여 기꺼이 맞이함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신앙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 요한이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로 공언한 것 말고는 그 신앙이란 것에 대하여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실로 그게 그 분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훨씬 크신 분이 틀림없다” (요한13,20)

 

, 이제 각자 시도해보자. 하루에 10-15분씩 매일 침묵 속에 젖어들 수 있는 계획을 세워보자. 시간과 장소를 정하자. 어떤 게 나에게 가장 편한 몸의 자세인가도 살펴보자. 먼저 숨을 쉬는 나 자신을 의식해 보자.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리듬을 타면서 반복해 보자. 그렇게 침묵 속에 잠겨 가면서도 오히려 나의 관심을 더 끌어 모으는 나의 내적인 동요와 산만해지는 정신이 얼마나 나를 어렵게 만드는지도 잘 보자. 하지만 또한 나는 본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마태6,32)’ 라는 말씀이 얼마나 우리 삶에 절실한가를. 하느님 앞에서 내 삶의 줄거리, 그 본질을 다시 그리고 새롭게 발견하기 위하여, 하루에 한 번씩 꼭 실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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