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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삶(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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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15 00:09 조회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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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글입니다. *

 

성찰(The examen)


◆ “구하고 찾아라!”

 우리는 성찰의 실제적인 방법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면서 이렇게 성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를 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들을 찾아야 하고,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삶에 관한 진리를 증거할 방법,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방법, 정의를 위한 투쟁에 함께 할 방법, 진정으로 하느님을 드러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찰은 (양심이든 의식이든, 인식이든지 간에)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성찰은 개인을 위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훈련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개인적인 부분에 우선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공동체적인 성찰을 위해 개인 성찰은 다른 사람들과 소속 본당 그리고 전체 교회와 일치하는 영역까지 보다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요약하자면 성찰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구체화되게 도와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성찰을 통해 우리는 모든 측면에서 우리 삶을 통합할 수 있게 되고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목표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구하라, 찾을 것이다. 마음을 다해서 나와 함께 찾으면 나는 줄 것이다.”(예레미아 29장 13절 - 14절)는 확신을 갖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을 찾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 “제가 여기 있습니다.”

 성찰의 시간은 하느님께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잡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시간이고 이를 통해 나는 모든 영역에서 성부께로 돌아서게 된다. 가장 큰 행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완전히 나를 따르기 위해 자유롭게 된 사람은 행복하다.” 성찰은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움이란 마음을 비움을 의미하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당신의 계획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기쁜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된다. 자유는 봉사를 의미한다. 성찰 생활은 하루 중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보통은 저녁에 약 15분정도 성찰을 한다. 성찰의 순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각 단계를 밟으며 성찰할 수 있지만, 꼭 한 번에 모든 과정을 따라서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찰 과정 중 오늘은 몇 가지만 선택해서 하고, 나머지는 내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을 향한 고유한 순례를 하고 있고,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성찰이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성찰 방식을 정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는 6단계로 이루어진 성찰 방식을 제안하려고 한다.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성령의 빛을 구하기, 감사, 하루를 돌아보기, 잘못을 아파하기, 내일에 대한 희망 갖기

1. 하느님의 현존에 참여하기

  오늘 하루 겪은 스트레스와 역경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현존하시고 계심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꾸준한 계획을  다시 상기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운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불림 받았다. (에페소 1장 4절). 그렇게 때문에 성찰의 첫 단계에서는 하느님이 언제나 온전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의식한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랑스럽고 겸손하게 나를 보고 있는 하느님을 바라 보기”(성녀 데레사)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며 무한한 사랑과 존경심을 갖고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비록 일상 안에서 우리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깊어진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성삼위가 당신의 사랑 안에 나를 안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 안에서 쉴 수 있다. 바쁜 하루를 살아가면서, 이렇게 성삼위를 묵상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이 성찰을 통해 우리는 성삼위와의 진정한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필요하다면 좀 오랫동안 이 단계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성삼위가 나와 함께 현존하신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진리이다. 성삼위는 나를 바라보면서 웃으신다. 나 역시 하느님 앞에서 기쁨에 차 웃는다. 나는 성삼위가 어떻게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볼 수 있으며, 성서에도 이런 주제의 글이 많이 나온다. 나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을 닮았고”, “소금”이며, “빛”이고, “벗”이고, “아버지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다.

2. 빛을 청하는 기도
 
 성삼위가 나를 보시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성령의 빛을 청해야 한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 안에서는 어둠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온전한 빛도 아니고 투명하지도 않다. 비록 깊은 내면 안에서 나는 성삼위와 그들의 계획을 향해 서 있고 함께 하려 하지만, 아직도 성삼위는 온전히 나와 함께 당신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내가 성삼위를 이해하고, 당신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을 이해하는 정도는 매우 미미하다. 성삼위는 오늘날 내가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즉 세상을 돕기를 바라고 계신다. 성삼위는 특정한 방법을 통해 내가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시고, 이미 이 방법을 일러주셨다. 성삼위는 결코 나와 ‘장난치려’하지 않으시고, 무엇인가를 하라고 요청하시지만 결코 어떤 특정한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시기에 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죄의식이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삼위는 당신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성삼위는 오늘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얼굴과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삼위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삼위에게 올바로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은 이미 다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미약한 이해와 약한 의지를 지닌 나는 성삼위에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빛을 달라고 청한다.

3. 감사
 
 감사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았다는 데 그 맥락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삶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특별한 선물 예를 들어 생명이나 건강, 아름다움이나 자연과 같은 선물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삶이 선물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창조는 “하느님의 현현”이다 (본 발타사르) 우리는 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 우정, 당신께서 하신 일,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 우리가 받은 친절함, 은총의 순간들, 좋고 도움이 되는 사건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 각자의 구원사가 고유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데는 일정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이 유형, 독특한 구원사를 성찰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하게 된다. 어떤 글이나 성서 구절들, 예를 들어 우리와 성삼위의 관계를 몇 마디로 표현해주는 성서 구절들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 것도 아쉽지 않네”(시편 23장 1절) 하느님께 나의 마음을 돌리면서 우리는 성삼위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데 대해 감사하게 되고, 내가 나 자신을 개방하는 만큼 성삼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에 감사하게 된다. 하느님께 감사드릴수록 우리도 감사로 가득 차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렇게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우리가 당신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 역시 당신의 선물입니다.” (성찬례 서문) 점차로, 우리는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점점 감사로 가득 차게 되고, 쉽게 감사드리고, 민감하게 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선하심 안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된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성찬례 서문) 감사드리는 것은 인간과 영적 삶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표징이다. 성찬례 자체에서 우리는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나는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

4. 하루를 돌아보기
 
 모든 것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 일어났던 체험 중 어떤 것이든 돌아볼 수 있고, 비록 우리는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이 사건 안에 계시면서 우리들이 당신을 찾아내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일어났던 이러 저러한 일들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혼자서 겪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성삼위는 이 사건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셨고, 이 사건 안에서 움직이시고, 우리가 당신을 향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이 일을 마련하셨다. 하느님의 손길은 언제나 생명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치유한다.
 하루를 성찰하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좋고, 감사드릴 수 있는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는 성삼위와 협력했던 시간, 사랑과 기쁨, 인내 안에서 행동했던 시간,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열매를 보는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 하루를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그날 받은 특별한 은총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
 두 번째는 성삼위의 눈으로 성삼위와 함께, 그날 있었던 부정적인 사건들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두렵거나 불안했던 시간들, 성삼위가 계심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기 힘들었던 여러 상황들, 성삼위처럼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남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순간들... 이 모든 시간들을 성삼위와 함께 되돌아본다. 성삼위는 우리가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신다. 이것이야말로 신약성서에서 가장 강조했던 주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두려움에 휩싸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모든 사물을 인간 중심적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의 순간을 견뎌내고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삼위는 나의 이런 약함에 연민을 느끼시고, 바로 이런 어려움과 실패를 통해 성삼위의 진리,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가르치신다. 내 삶의 부족함들, 성급하고, 참을성 없고, 걱정하고,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모습을 완전히 치유하고, 여기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며칠이, 몇 주가, 몇 달이, 심지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믿음을 갖고 노력해 나간다면, 우리는 기도 중에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진실함 속에서, 성삼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기도했다. “제가 당신을 알게 하소서. 제가 나 자신을 알게 하소서.” 바로 이 기도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당신의 힘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고자 애쓰시며, 내가 느끼거나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깊은 내면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때때로 몇 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데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변하게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렇게 변화되기를 원했으며,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성삼위께 청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성삼위는 우리가 당신께 청하기를 바라신다.
 성찰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각자를 당신께로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고유한 방법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봉사하도록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런 하느님의 이끄심은 특별한 은총이다. 이 은총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으로 점점 이끌리게 된다. “여러분 각자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십시오.”(베드로1서 4장 10절) 하느님께서 나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처럼 더욱 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당신께서 오늘날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시는 지를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성찰은 그날 있었던 시간 중에서 성삼위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살피고, 혼자 있거나, 성삼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던 시간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당신은 저와 함께 계시지만, 저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0장 27절)
 어떤 방식으로 성찰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성삼위께 각자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실망스럽거나 부끄럽거나 외롭던 간에, 혹은 평화롭거나 힘이 나던 간에, 언제나 솔직해야 한다. 또한 성삼위께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고 계신지를 물어 본다. 이렇게 물어보면서 우리는 성삼위가 언제나 사랑스럽게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결코 나에 대한 희망이나 바람을 줄이시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된다. (예레미아 31장 3절) 성삼위의 “힘은 우리가 요청하거나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한하게 항상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있음”(에페소서 3장 20절)을 상기시켜 준다. 이 힘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어 성삼위의 진리와 빛 안에서 살게 된다. “성삼위의 빛 안에서” 살아가는 데는 고통과 희생이 뒤따른다. 죄를 짓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 참여하기 위해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결정을 해야할 수도 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외로운 작업이며,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게 성삼위에게로 마음을 돌린다면 분명하게 이런 고통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새로운 삶을 낳을 것이다.

5. 잘못을 아파하기
 
 그날 있었던 일 안에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성삼위의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 우리 삶의 중심에서 성삼위를 멀리 한 것이다.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계시는 성삼위를 묵상하며 우리는 여전히 사랑 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사랑 받는 죄인이다. 성서 구절들을 보면서 우리는 각자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잃어버렸다가 양치기가 찾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양과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실, 양치기의 어깨에 올라타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과도 같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99마리의 양보다 훨씬 목자와 가까이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루가 15장 5절)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우리 삶의 근원이자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또 십자가상의 예수 앞에 서서, 그분이 자신의 모든 삶을 나를 위해 다함없는 사랑 안에서 내놓으셨음을 보게 된다. 예수는 성부의 전망 안에서 모든 사물과 일을 바라 보았다. 예수는 결코 실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이와는 많이 다르다. 이제 하느님 앞에서 나는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회심하고 변화될 수 있도록 은총을 달라고 청한다.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모든 것을 성삼위 앞에 놓아드리기는 커녕 자신만의 탑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느님께 회심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청한다.

6. 미래에 대한 희망
 
 미래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성령께 의지한다. 성부께 온전히 나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성령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이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이제 다시 우리는 성삼위와 그분의 계획에 나의 삶의 중심을 맞추고, 사물에 대한 성삼위의 전망을 더욱 더 가지게 된다. 이 과정을 할 때 성서 구절이나 말씀, 영상을 떠올리게 되면 우리는 희망이나 안전감을 더욱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오른손으로 너를 붙잡아주겠다. 두려워말라, 너는 내것이다. 네가 물속을 걸을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사야 43장 1절-2절) 이렇게 내적인 자유로움이 강화되어 가면서 우리들은 성삼위를 위해 보다 더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된다. 우리는 겸허하게 자신을 개방하면서 끊임없이 성삼위의 요청을 듣고 새롭게 응답하면서 살아간다. “완전히 우리들을 위해 자유로운 사람들은 행복하다.” (마태오 5장 3절 참조).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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